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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높고 외로운 이름

by 바양골리 2025. 4. 12.

몽골, 그 높고도 외로운 이름
몽골, 그 높고도 외로운 이름


 몽골이라는 이름을 처음 입에 올릴 때, 내 목울대가 잠시 멈칫했다. 발음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몽골. 끝없이 펼쳐진 하늘, 사람의 손길을 거부한 듯한 초원, 그리고 고요한 바람. 그 이름은 어딘가 높고도 외로운 무엇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몽골은 해발 평균 1,580미터의 고원 국가다. 지리적으로도 ‘높은 나라’다. 하지만 내가 느낀 높음은 숫자의 높이가 아니라, 정서의 높이였다. 이곳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사람들이 조용히 살아간다. 드문드문 마주치는 유목민들은 말보다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며, 말소리보다 더 깊은 침묵 속에 삶을 담아낸다. 그 정적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가득 차 있다. 공기조차 고요한 울림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몽골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분주했다. 지하철은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갰고, 휴대폰 속 알람은 하루를 조각냈다. 그렇게 잘게 쪼개진 시간 속에서 나는 ‘빠름’이 곧 ‘살아 있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정지된 시간’과 마주했다.

 

 초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자꾸만 내 안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초원의 바람은 고막을 지나 마음을 흔들었고, 아무것도 없는 평야는 내 존재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몽골이라는 이름이 왜 외로운 이름인지.

외로움은 고립이 아니라, 스스로를 온전히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루는 유목민 가족이 차를 마시자며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차는 따뜻했고, 낯선 염분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웃었다. 아주 짧은, 그러나 깊은 웃음이었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은 외로움을 견디는 법이 아니라, 외로움과 함께 사는 법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묶고있던 게르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들판 위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라는 표현은 몽골을 두고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 그리고 숨을 쉬기조차 조심스러운 고요함. 그 아래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평화를 느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

 

 아마도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기만의 리듬으로 존재하는 삶. 그것이 몽골의 초원이었고, 그 초원이 말없이 건네던 메시지였다.

 

 우리의 일상은 너무 많은 정보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과의 대화, 메신저 알림, 채워야 하는 수치와 달성해야 할 목표들. 그런데 이곳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초원은 묻지 않는다.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초원에서야 비로소 진짜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이 삶을 나는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나의 외로움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몽골은 내게 어떤 명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내 안에 무너져 있던 공간 하나를 복원시켜주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조용히 내쉴 수 있는 자리.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화.
달리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리고 외로움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밤.

그래서 나는 그 이름이 좋다. 몽골, 그 높고도 외로운 이름.

 

 그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마음일 수 있고, 어떤 시절의 기억일 수 있으며, 어떤 삶의 자세일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외로운 존재가 되기를 두려워하지만, 바로 그 고요한 외로움 속에서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이제 나는 안다.
몽골은 높기에 외롭고, 외롭기에 깊으며, 깊기에 아름답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 마음 어딘가에서 초원의 바람이 살며시 불어온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이름을 한 번 더 되뇐다.

 

 몽골. 그 높고도 외로운 이름.

 

Bold - Uulen Domog ft. Rokit Bay (Official Music Video)